현재 우리에게 전해진 음악 작품들을 어떻게 다루는 것이 공평한가?
예술이냐 역사냐?
음악사와 일반역사 사이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영국 종교개혁의 역사나 미국의 혁명사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이들의 서로 다른 점을 열거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특별한 중요한 점에 주목하기를 바란다. 음악사 연구의 주요 대상은 음악 작품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을 예로 들어 보자. <영웅>은 여전히 활발하게 살아있는 우리 현재의 일부이다. 정치적 사건은 이렇지 않으며, 심지어 긴 기간 동안 이루어지는 사회 경제적 개혁도 이렇지 않다. 물론 그들도 나름대로의 파급 효과가 있고, 종종 후에 정치적 사회적 현실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기간의 길고 짧음의 문제로, 어디까지나 과거에 속한 사건일 뿐이다.
이 차이는 음악사나 다른 예술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 작품이 실제로 우리 현재에 속한 것이라면 오히려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다르게 말해서 오늘을 위한 작품이 오늘의 시대 안에 있는 작품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역사는 지금(현재)과 그때(과겨)사이의 대화 같은 것이다. 첫쨰로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때가 우리에게 지금에 대하여 가르쳐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보기보다 좀 복잡하다. 역사는 현재에 쓰여진다. 하지만 심지어 일반 역사에 있어서도 어디에서 과거가 끝나고 현재가 시작되는지 정확히 말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예술사에서는 이 둘 간의 대화가 더 복잡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여러분이 만약 하나의 작품(오늘을위한작품)으로서 <영웅>의 성격에 정말로 관심이 있다면 그것을 역사적으로 보다는 분석적으로 고찰해야 더 많이 배울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이 절에 붙인 제목인 '예술 대 역사'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이다. 음악 작품에 대한 역사를 어떻게 서술하는 것이 최선인지 결정하는 것이 왜 언제나 그렇게 쉽지 않은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한편, 오히려 음악 작품의 소용을 가지고 역사를 서술하는 것은 쉽다. <영웅>은 단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속에 있다. 그것은 20세기 초 파리, 19세기 중반 라이프치히, 그리고 물론 베토벤이 살아 있을 당시 빈에서도 역시 잘 살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각각의 경우에서 <영웅>은 다른 것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 그 각각의 당시에 그것은 다른 종류의 힘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영웅>이 자신을 여러 방식으로 그들과 연관 짓고, 그 자신을 그들에게 맞추거나 그들을 변화시키면서, 서로 다른 사회적 문화적 체제에 걸쳐 살아왔는지 추적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그것은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다른 귀가 들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토마스 사이프는 <영웅>의 수용과정의 몇 단계를 개괄했다. 나는 이 단계들을 소개한다.
베토벤 <영웅>:수용의 몇몇 패턴들 |
혁병적 프로파간다: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헌정한 것과 이후 그 헌정의 철회는, 마지막 악장에 자신의 발레곡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의 모티브를 사용함으로써 이 둘을 연결시킨 것과 더불어 <영웅>과 혁명의 시대를 필연적으로 연결시킨다.
표제적 해석: 위의 항목에서 발전한 것으로,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그리고 보나파르트의 초상화 등과 연관시켜 전쟁의 형상에 바탕을 둔 19세기의 해석들이 존재한다.
심리학적 해석: 이런 해석은 주로 19세기 후반에 싹튼 것으로, 일반적으로 전기적인 서술들, 즉 충분히 추측 가능한 베토벤의 독일 민족주의 사상, 그의 선견지명적인 통찰력, 역경(청각장애)을 이겨낸 승리 등을 강조한다.
구조적, 역사적인 해석: 이런 해석은 동기나 화성을 통해 작품의 통일성을 증명하기 위해 고안된 20세기 분석적 접근뿐만 아니라 그 본래의 역사적 의미들을 재발견하기 위한 해석들도 포함한다.
하지만. 각 세대마다 이러한 종류의 수용들이 새롭게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앞선 수용의 카테고리들이 이후 시기에까지 남아있었다.
음악이 과거에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이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현대의 수용사들 중 특별히 전문화된 여러 역사들이 몇몇 거창한 질문들을 던지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종종[드러나게 또는 암묵적으로]예술 작품에 대한 동시대 사람들의 반응(베토벤 시대 청중의 <영웅>수용)에 별다른 특권을 부여하지 않으며 작품의 의미란 그것이 나온 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동안 유지되고 발전해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역사 공부의 핵심이며, 내가 계속 제기하게 될 그와 관련된 많은 문제들과도 바로 관련이 있으므로, 이 주제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자. <영웅>의 수용사란 진정으로 음악적 취향의 변화와 그러한 변화에 영향을 미친 사회적 요인에 관한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작품 그 자체에 대한 무엇인가를 보여줄 수 있는가? 어쨌든 <영웅>과 같은 하나의 작품을 걸작의 반열에 올라가게 한 것이 무엇인가? 그러한 걸작들로 정전목록이 구성된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작품 자체의 성격에서만 찾을 수 있을까? 작품 분석을 하면 밝혀질까? 아니면 어느 정도의 이념적인 문제인가? 다르게 말해, 정전 목록은 문화적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왜 어떠한 집단(예를들어, 여성)과 어떠한 지역(예를들어, 그리스)은 음악사에서 배제되거나 경시되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