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학]음악미학과 비평이론, 음악, 정치, 의미:비평적 이론
음악, 정치, 의미:비평적 이론
아래 두 경우는 얼마나 의미와 음악의 문제가 중요한지 보여줄 것이다. 나치는 멘델스존과 같은 유태인 작곡가들의 음악을 그들의 '유태인성'때문에 금지시켰으며, 음악이나 다른 예술의 모더니즘적 형태에 대해서도 대개의 경우 반대했다. 스탈린은 쇼스타코비치에게 소비에트 민중의 교화에 기여하지 않는 이른바 '형식주의'라는 비난을 면하려면 그가 작곡한 것을 수정하라고 강요했다. 나치의 음악에 대한 태도는 인종차별주의로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음악에서 유태인성'이라는 것 자체만으로 터무니없는 말이다. 하지만 음악이 금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음악이 문화적 힘(만약 순수하게 형식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설명할 수 없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편 형식주의적 접근은 음악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잘못 사용되는 것을 막아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스탈린의 압력을 생각해보라. 거의 모두 우리가 그것을 듣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도리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간주하는 음악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의 일부는 종종 음악은 우리가 습관적으로 정상으로 생각해왔던 것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악에 도전하는 것을 억누르고 싶어 하는 스탈린의 욕구는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다른 것들을 억누르고 싶은 그의 욕구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음악과 현대 사회의 다른 측면 사이의 이런 식의 연결이 20세기 음악 미학의 특징이다. 음악과 사회에 대한 관심은 근본적인 딜레마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어떤 입장들은 사회경제학적으로 음악의 발전을 설명하려고 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러한 입장들은, 예를 들어 광고, 마케팅, 새로운 형태의 소통수단이 록 음악에 미치는 영향 같이, 어떻게 사회가 음악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음악은 단지 사회 분석의 결과로서만 이해되기 때문에 그 분석에 무엇을 더 포함시켜야 하는가에는 관심이 없다. 예를 들어 베토벤은 유럽의 부르주아들이 프랑스 대혁명에 가담했던 영웅의 시대를 대변한다. 이러한 종류의 분석은 동유럽 공산권에서는 매우 흔하다.
서독일의 철학가이자 음악학자이자 사회이론가인 아도르노는 음악과 사회가 밀접하게 역여있다는 마르크스주의적 사고를 받아들이고 사회에 대한 비판 이론을 내놓았다. 아도르노는 지금 설명한 함정만을 피하고자 했다. 그는 음악을 일종의 사회의 무의식적인 역사로 보았다. 아도르노는 '음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든 답이 그 음악이 만들어지고 연주되는 사회의 맥락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의 도전은 음악의 형식적 측면을 공평하게 다루는 동시에 음악의 사회적 내용을 분석할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이것은 좀 불가능한 계획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도르노의 핵심 중 하나는 작품의 형식을 실제로 보여주는 연주란 그것의 내용을 보여주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연주가 그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작품의 이해를 제공한다. 이 이해는 말로써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에서의 이슈들뿐 아니라, 작품이 반응하고 그 결과가 영향을 주는 음악에 대한 작품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예를 들어 19세기에 멘델스존에 의한 바흐 부활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연주 양식이 바흐의 연주관습의 역사와 그것이 나왔던 사회에서 지배적이었던 사상에 대해 무엇을 보여주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라.
아도르노는 독특하게도 형식이 '침전된 내용'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사상의 대부분은 형식과 내용과 같은 대립이 절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아이디어에 기초한다. 형식은 내용이 될 수 있고 내용은 형식이 될 수 있다. 이 아이디어의 핵심을 보여주는 예가 현대 음악에서 표현(즉 내용)과 관습(즉 형식) 사이의 긴장이다. 유일한 어떤 것을 표현하려는 (주관적인)욕망은 이해되도록 하려면 어느 정도는 관습적인 (그리고 객관적인 )음악 형식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과 떼어 놓을 수가 없다. 아도르노가 '문화 산업'이라고 부르는 것이 생산해낸, 현대의 최악의 음악들이 목표로 한 것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팔리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것들은 단지 관습적이기만 함으로써 최소공통분모를 찾는다. 아도르노는 이것을 나치가 권력을 잡도록 허락했던 일종의 순응주의적 사고와 연관시킨다. 음악에서는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표현하는 능력을 잃지 않으면서 단순한 관습을 피하는 것이 어렵다. 이것이 형식적 문제가 음악의 사회적 내용이 되는 이유이다. 아도르노는 특히 쇤베르크와 '2차 빈 악파'의 다른 멤버들의 급진적인 음악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그는 그들이 타협을 거절한 것을 그들이 작곡했던 혹독한 시절에 대한 진상을 전달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현대 음악이 더 새로운 기법과 형식을 만들수록 혁신은 훨씬 더 어려워진다. 이미 인정된 규범을 받아들이라는 압박이 비판적이고 혁신적인 활동을 훨씬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동일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