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학

[음악학]세계음악, 정통성을 가진 소리?

#최군 2020. 3. 28. 08:07

정통성을 가진 소리?

 

  여러분은 아마 몇 초간의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수많은 음악과 세계의 특정 지역을 즉각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시타르의 몽환적인 슬라이드와 부드러운 드론 현들은 인도를, 플라멩고 기타의 프리지안 조성과 하행하는 종지는 스페인을, 디저리두의 풍부하고 울림이 많은 화음의 스펙트럼은 호주를, 살사의 클라베스 리듬과 몬투노 피아노는 라틴 아메리카를 연상시킬 것이다. 이러한 소리들은 영화, 텔레비전 광고 등의 매체에 스며들어 세계의 특정 지역이나 그것과 연관된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사용된다. 한편으로 이 소리들은 독특함(예를 들어 장소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이나 이국적임을 불러내도록 인정받은 신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고정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예들은 모두 '진실'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그 지역에 있는 다양한 음악들을 결코 대표하지는 못한다. 아프리카의 어떤 음악을, 세계적으로 조율된 우리의 귀에 '아피리카적'으로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덜 아프리카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결국 아프리카 전통을 표현하려면 세계적으로 아프리카적이라고 받아들여진 소리를 사용해서 '아프리카' 소리를 내야한다는 뜻인가?

  북아메리카의 파우와우 음악에서 일어난 일이 정확하게 이것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아메리카 원주민 공동체에서는 토착민의 정체성이 중요해졌다. 그래야만 그들이 소수집단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토지나 다른 혜택을 받을 권리를 얻기 때문이다. 파우와우는 북 연주, 노래, 춤으로 토착민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따. 역사적으로 보면 파우와우는 평원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행해졌지만, 대중의 상상 속에는(주로 할리우드 영화 덕분에) 파우와우가 정통 아메리카 원주민의 관습이라는 생각이 깊이 스며있다. 현재 파우와우 이벤트는 대학 캠퍼스를 포함하여 매우 많은 장소에서 조직되고 있으며, 참가자들은 행사를 참석하기 위해 아주 먼 거리에서부터 오기도 한다. 이렇게 파우와우가 토착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방식이 된 이후 그 영향으로 몇몇 아메리카 원주민 공동체에서는 19세기부터 그들이 연주해오던 피들 음악과 같은 다른 형태의 문화를 파우와우가 대체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 있는 몇몇 부족들은 자신들을 '할리우드 인디언'과 동일시하고 있는 현재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그들의 토착적인 지역 전통을 부활시키려고 하고 있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우와우 현상의 폭발적인 증가가 말해주는 바는, 심지어 이것이 문화적, 역사적인 전통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통한'것으로 보이고 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통성으로 인식되면, 비록 그것이 불안하거나 전적으로 잘못된 기반에 기초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권위를 부여 받고 사람 혹은 집단의 수용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하와이에서 활동하는 종족음악학자 리카르도 트리밀로스는 그가 연주회에서 기모노를 입고 무릎을 꿇고 코토를 연주할 때 그가 일본 사람으로 얼마나 자주 오인을 받는지 매번 놀라게 된다. 그는 중국 혼혈의 필리핀인이므로 아시아인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분명 일본인은 아니다. 그런데 이처럼 일본 혗통으로 (잘못) 인식되는 것이 그의 음악을 듣는 청중에게는 그 연주회 경험을 더욱 '정통한' 것으로 만들어주며, 그의 고토 연주자로서의 신뢰성과 권위를 높여준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비록 그가 일본어에는 능숙하지 않더라도 일본에 있는 평범한 사람보다는 훨씬 고토를 잘 연주할 줄 알며, 정기적으로 이본 학생들도 가르친다. 비슷한 예들은 아주 많다. 특정 음악전통의 장소와, 또 문화 전달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정통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매우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결정적인 표식이기도 하다. 볼리비아 고원지대에 있는 시골 공동체 출신의 젊은 남자가 작은 만돌린같이 생긴 차랑고를 치면서 평범하게 마을로 걸어 들어오고 있다면,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그의 연주 스타일과 리듬을 통해 그의 종족이 무엇인지는 물론 어느 지역 출신인지도 즉시 알아 볼 것이다. 또한 안데스 축제 기간에는 어느 음악이 더 시끄러운지 경연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거기에 참가한 밴드들은 특정 공동체나 특정 지역과 동일시되는 것인데, 이들은 음향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한다. 밴드들은 흔히 부족을 상징하는 선율을 연주할 것이다. 하지만 혹시라도 다른 그룹의 연주자들이 같은 선율을 연주한다고 할지라도, 이들이 서로 힘을 모으거나 하나의 그룹으로 함께 연주할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아마 약간 극단적인 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다 일반적으로, 음악은 여러분이 누구고 혹은 여러분이 누군가가 아닌지, 여러분과 동일시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여러분은 어디에서 왔는지를 표시해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물론 기본적인 사회적 기술의 일부로서 우리는 모두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시들(그것이 옷이든, 음악이든, 언어이든)을 상황에 따라 종종 매우 무의식적으로 교체한다. 다시 말해 여러분은 분명히 특정 음악에 대한 여러분의 열정이나 혐오를 다양한 지인들과 똑같이 공유하지는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