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세계음악을 연구하는가?
19세기 후반 이전까지만 해도 다른 문화의 음악에 대한 연구가 매우 드물었따. 하지만 타국의 음악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음악과 이국적인 외국음악의 성격을 비교했으며, 유럽 탐험가들은 현지에서 음악을 접하고 깊은 사명을 받기도 했다. 1500년경 두아르테 데 로페즈는 아프리카 콩고에서 아치 모양의 아프리카 하프 연주를 듣고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이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은 이상적인 비율로 현을 조율했으며, 마치 하프처럼 손가락으로 그것을 뜯었다. 깃대 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매우 기술적으로 연주했기 때문에 그들이 만들어 내는 선율은 너무 좋아서, 그들을 기쁘게 하고 기분 좋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것도 감탄스러웠지만 그 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은 이 악기를 통해 마음을 빗대어 표현했고, 서로가 그것을 잘 알아들었다. 우리가 말로 설명하는 거의 모든 것을 그들은 이 악기를 만지고 뜯는 손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
하지만 이후에 도착한 이주 정착민과 선교사들은 이 사람들을 통치하고 자신들의 가치와 신념을 강요했으며, 음악에 대해 종종 훨씬 더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음악을 하는 것은 주로 기돌교로의 개종을 저해하는 토착민의 저항이나 '이교도의 신앙'과 동일시되었다. 17세기에 페루에 갔던 스페인 선교사들은 '우상 숭배 근절'운동의 일환으로 그들의 악기들을 파괴했음을 자세히 기록했다,. 하지만 동시에, 마치 오늘날의 박물관처럼, 타문화의 악기들을 다른 이국적인 공예품과 함께 개인 소장품으로 수집하고 전시하기 시작했다. 미하엘 프레토리우스의 [악기도감]같은 문서에서도 그러한 악기들이 유럽 악기들 사이에서 소개되었다.
몇몇 식민지의 관리들은 그들이 접한 음악에 학문적으로 깊은 관심을 갖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의 고등법원 판사였던 윌리엄 존스가 집필한 [힌두교 신자들의 음악 연구]는 영국 최초의 인도 음악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의 저명한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학술적인 작업조차 식민지인들을 차별하고, 억압하고,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식민 통제의 또 다른 형태였을까?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사이드는 나폴레옹이 23권에 달하는 [이집트 해설]을 출판하게 한 것도 나폴레옹의 학술적인 이집트 침공으로 본다. 나폴레옹 군대의 학자들 중에서 이 전집을 위해 음악에 대한 자세한 연구를 수행한 사람은 기욤 앙드레 빌로토였다. 그가 자신이 집필한 부분의 서문에 쓴 내용이다.
우리는 귀를 찢어지게 하는 혐오스러운 음악을 견뎌야만 한다. 그 음악의 음조는 강제적이고 거칠고 야생적이며, 과도하고 야만적인 취향으로 장식되었고, 매력적이지 않은 콧소리와 불안정한 목소리로 노래되고, 그 소리가 약하고 가늘거나 거칠고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를 내는 악기로 연주되었따. 이것이 이집트 음악에 대한 우리의 첫 인상이었다....하지만 우리가 처음에는 혐오스럽다고 생각했던 몇몇 음료수들이 자꾸 마실수록 덜 불쾌하게 느껴지고 언젠가 완전히 그것에 익숙해졌을 때는 심지어 맛있다고 느끼는 것과 똑같이, 아랍 음악을 감상하는 것에 오랜 시간에 걸쳐 익숙해지면서 맨 처음 이 음악을 접했을 때 느꼈던 혐오스러움은 줄어들거나 사라졌다. 처음에 우리가 가장 혐오스럽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것을 언젠가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집트 해설:음악 예술의 현 상태] |
비록 빌로토는 제국 프로젝트의 하수인이었다고 할지라도, 이집트 음악에 대한 초기의 혐오감이 점차 강력한 공감으로 변하는 것에 대해 생생하게 설명한 것을 보면, 그는 타자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이집트 음악을 악보로 옮겨 적었는데, 아마도 그것은 서양의 정상적인 기보법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음정들을 기보하기 위해 특별한 상징기호들을 창안했던 최초의 사례일 것이다.
세계의 인종들 중에서 백인을 진화 단계의 제일 꼭대기에 놓은 진화론은 19세기의 음악적 태도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찰스 다윈은 남아메리카를 여행하는 동안 티에라 델 푸에고 제도의 토착민을 보고 다음과 같이 일기에 적었다. '나는 세계를 다 뒤져도 더 이상 낮은 단계의 인간은 찾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살바도르 다니엘이 현대 아랍 음악은 여전히 유럽의 트루바두르와 민스트럴 음악 수준, 다시 말해 서양 예술음악에 비해 그 발전이 500년 이상 뒤떨어졌다고 저술한 것을 보면 이렇게 문제가 있는 진화론적 시각이 1915년에도 여전히 대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1970년대까지 출판된 대부분의 일반 음악사 저술들에는 '원시적인'음악이라는 장이 있는데, 이는 아프리카, 아메리카, 태평양 제도의 토착민들의 음악을 선사시대 음악과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는 의미이다. 1880년대 세계의 다른 지역의 음악에 대한 공식적인 음악학인, 이른바 '비교음악학'의 출범에는 유럽 문명을 인간의 성취의 절정으로 생각하고 그 기원을 이해하려는 욕구가 크게 작용했다.
1920년대에 브로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로 종종 대변되는 인류학의 '현장연구'가 증가함으로써 연구자들이 연구대상자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진화론에 대한 반론이 생겼다. 이들은 '문화'라는 개념, 즉 세계가 서로 다른 다양한 '문화들'과 다른 가치, 생활 방법, 표현 방식을 갖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에 근거해서 반박했다. 세계의 사람들에 대한 진화론적인 시각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는 점차 다른 특징을 갖는 독립적인 문화들의 다양성이라는 생각, 즉 다문화 세계라는 생각에 자리를 내주었다.
비교 음악학자들이 다양한 음악문화를 연구하고 그들의 독특한 특징을 이해하고 기록하면서 그들 학문의 명칭을 부자연스럽게 느끼기 시작했따. 그들이 원하는것은 더 이상 이른바 '원시적' 음악과의 비교를 통해 서양 예술음악의 역사를 쓰지 않고 타문화의 음악을 그 문화 자체의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이었다.이것이 1950년대에 그들의 학문의 새로운 이름으로, 비록 다소 거창하기는 하지만, '종종음악학'을 채택하도록 이끌었다. '종종음악학'은 주로 사회 안에서의 음악 연구 혹은 문화로서의 음악 연구로 정의된다. 여러분이 이것이 궁금할 것이다. 왜 세계의 음악을 연구하는 학문을 단순하게 '음악학'이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이러한 의문을 제기한것은 여러분이 처음이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음악학'이라는 말은 이미 서양 예술음악에 대한 연구, 즉 '위대한 작곡가들'과 그들의 악보에 대한 연구를 의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토착민, 민속, 다른 이국적인 구전 전통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는 종족음악학은 우월성, 특권의식, 엘리트주의적인 음악학과 연구대상에 있어 반대의 입장에 서 있다. 그렇지만 초기 종족음악학자들은 종종 지나치게 낭만주의적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대개 도시의 대중음악이나 '서양의'영향을 받은 음악을 피하고 자신들에게 순수하고, 정통하고, 타락하지 않은 전통으로 보이는 것들을 찾아다녔다. 대체로 그들이 발표한 문헌과 녹음들은 여전히 발전하고 있는 서양 예술음악과 대중음악과는 달리 이러한 음악 전통들이 수세기에 걸쳐서도 거의 안정되게 변하지 않고 남아 있다는 잘못된 인상을 준다. 그러나 물론 그렇지 않다. 살아 있는 음악 전통들은 언제나 변하고, 다른 지역의 요소들과 섞이기 마련이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세계음악에 대한 연구는 소통수단과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다양한 세계의 소리들을 얻게 되면서 여러 가지 방향으로 변했다. 음악학과 종족음악학도 꽤 그들 사이에 있는 차이를 줄였다. 많은 음악학자들이 보다 세계화된 시각을 받아들였고, 일부 종족음악학자들이 서양 예술음악을 민족지학적으로 접근하기도 했다. 비록 종족음악학의 정체성은 여전히 세계의 다양한 음악을 연구하는 것이지만, 오늘날에는 이 학문을 그것의 연구대상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훨씬 덜해지고, 오히려 접근방법으로 규정한다. 종족음악학의 접근방법 중 가장 전형적인 것은 이른바 민족지학의 '현장연구'이다. 그렇지만 현장연구도 점점 대도시에서 혹은 인터넷을 통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음악적 민족지학, 즉 종족음악학 연구자들은 음악의 창작, 연주, 수용과 관련된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가, 또 어떻게 음악을 만드록 이야기하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친숙해지려고 노력한다. 대개 종종음악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대상자들의 음악을 연주하고, 그 언어를 말하고, 그들의 삶에 참여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낸다. 다시 말해 그들은 '내부에서' 음악 '문화'를 경험하거나 그 문화의 '부분'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참여 관찰' 이라고 불리는 방법론과 같은 성격으로, '내부자'와 '외부자'사이의 균형을 바로잡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학자들은 수십 년간 연구하면서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내부'와 '외부'라는 개념이 명백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찬가지로 문화를 사람들의 집단을 한정하는 단위로 정의하든지 아니면 음악적 표현의 형식으로 정의하든지 간에 '문화'라는 개념에 심각한 문제들이 있다. 우리는 특정 사람들과 특정한 문화적 자산들을 공유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우리를 같은 문화적 속한 것으로 만들어주는가? 틀림없이 특정 집단에는 다른 집단들에 없는 보다 '전형적인'문화적 자원이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개별적인 문화적 입장은 극도로 주관적이며 매순간 변한다는 사실이다.
종족음악학자들은 음악하기와 관련된 사회 역동성과 그 과정을 강조하며 연주에 특별한 흥미를 갖는다. 연주, 연주자, 이벤트, 음악하기의 구전 전통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전통적으로 작곡가와 악보에 초점을 맞추는 음악학과 대조적이다. 지난 수십 년간 연주를 기록하는 데 사용된 테크놀로지의 범주는 초기 비교 음악학자들이 사용하던 밀랍 원통 녹음기에서부터 오늘날의 디지털 비디오와 하드 디스크 녹음기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매우 넓다. 하지만 세계음악을 기보하려는 시도 자체가 그런 것처럼, 가장 최근의 테크놀로지조차 연주의 아주 부분적인 장면만을 담아낼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을 분석하기 위해 종족음악학자들은 다양한 범주의 방법론과 기술을 사용하여 새로운 접근법을 계속 개발하고 있다.
'음악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악학]세계음악, 세계 음악의 지도를 만들 수 있는가? (0) | 2020.03.27 |
---|---|
[음악학]세계음악, 음악에 장소가 있는가? (0) | 2020.03.26 |
[음악학]세계음악, 월드뮤직, 포함과 배제 (0) | 2020.03.23 |
[음악학]음악미학과 음악비평, 음악학에서 미학적 질문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0) | 2020.03.22 |
[음악학]음악미학과 비평이론, 음악, 정치, 의미:비평적 이론 (0) | 2020.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