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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학

[음악학]음악사회학 , 고급예술의 문제

고급예술의 문제

  나는 일부러 문화 사회학을(음악 사회학을 포함해서) 규정하는 특징 중의 하나인 대립적 성격을 설명하지 않고 남겨 두었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많은 문화 사회학자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을 인문학에서 당연시하는 방법이나 태도에 대한 거부라고 규정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문학, 예술사, 음악사 연구도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본다. 음악에서는(클래식 음악이 이 범주에 들어올 텐데) 고급 예술 작품들에만 관심을 두고, 그것을 천재의 산물로서만 봄으로써 그것을 낳은 사회적 맥락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음악학자들은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그들이 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을 부당하게 폄하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이 포스팅을 읽는 여러분ㅌ도 자신이 이러한 전통적 사고로부터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고급 예술은 이 세상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라는 생각을 일부러 조장하기도 한다. 미술관을 둘러보거나 조용한 콘서트홀에 앉아 있으면 느끼게 될 것이다. 거기에는 종종 인공적인 조명만 있으며, 가능한 철저하게 방음장치를 하며, 여러분이 작품을 감상하는 데 방해를 받지 않도록 하지 않는가 박물관 벽에 알록달록한 벽지를 바른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무엇보다 여러분은 관찰자이지 참여자가 아니다. 조각품을 만지면 주의의 받게 될 것이고, 모차르트 협주곡을 따라 노래를 불러도 같은 일을 당할 것이다. 제일 처음에는 직원들이 주의를 줄 것이고, 두 번쨰는 여러분과 같은 감상자들이 그럴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여러분이 규칙을 모르거나 그것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그들과 같은 감상자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음악회를 가거나 미술관을 관람하는 데 필요한 에티켓이 있는데, 그것은 거의 종교적 수준이다. 여러분이 그 작품들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들을 숭배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여러분이 그곳에 가는 순간 그것에 동의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만약 그것에 동의하지 않거나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 예술을 포함한 모든 전통이 여러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아래는 이 문제의 또 다른 면을 모여준다.

역 주변의 말썽꾼들을 움직인 음악(로저 스콧)

1998년 영국 뉴캐슬 지하철은 해마다 500,000 파운드 이상의 손해를 입히는 공공 기물 파손 행위를 음악으로 막아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시레무어 역에서 스팅이나 지미 네일 같은 영국 팝스타들의 음악 대신 딜리어스의 음악을 내보내기로 한 것이다. 이 같은 결정은 사회학보다는 심리학적인 면(활발한 음악 대 차분한 음악)에 따른 것이지만, 그 결과는 다음에서 보는 것처럼 분명히 사회학적이었다.

 - 클래식 음악의 부드러운 사운드 때문에 역에서 공공 기물을 파손시키며 문제를 일으키는 인물들이 떠나고 있다.

 - 록과 테크노 비트에 익숙해진 십대의 비행 청소년들은 영국 작곡가 딜리어스의 밝고 명랑한 화음을 견디지 못했다.

 - 불과 3주 만에 승객에게 위협을 가하고 기물을 파손하고 낙서를 일삼는 문제 많은 무리들이 시레무어 역에서 점차 사라졌다.

 - 경찰과 철도청은 이 같은 결과를 환영했고, 노섬브리아 경찰서의 알랜 커리 경감은 그들은 단지 그 음악을 참을 수 없어서 떠났다라고 말했다.

  그 때문에 많은 미술관과 오케스트라들이 이러한 종류의 장벽을 깨기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그 목표는 이른바 자기 검열을 줄이는 것이다. 어쩌면 그 예술을 즐길 수도 있었을 사람들이 그것의 의례 때문에, 또는 자신들은 그 의례에 익숙하다고 말하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기가 죽어서 그 예술로부터 등을 돌리게 된다면,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검열을 해서 떨어져 나가는 꼴이다.

  예술의 이러한 전통들이 인문학의 주요 의제인 문화라는 덩어리를 형성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사회학자들은 언제나 자율적인 예술품이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자율적인 예술품이라고 하면 독립적인 예술 작품을 설명하는 용어처럼 들리지만, 그것은 사실 어떤 가치 쳬계를 시사하는 규범적인 용어이다. 간단히 말해, 하나의 예술 작품이란 남달리 창조적인 예술가 정신이(음악이라면 천재 작곡가처럼) 낳은 순수하게 지적인 산물이라는 생각을 대변한다. 그 작품은 우리 세계에 존재하지만 그것의 예술적 본질은 세상을 초월한다. 바로 이러한 생각이 그 음악을 보통 사람들이 사고 싶어 하는 음악드로가 구별시키며, 그것들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든다. 자율적인 예술품은 상업적, 정치적 고려를 전혀 하지 않으며, 바로 그 이유를 들어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도록 부추긴다. 그것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고려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감상 방식은 너무나 뿌리 깊이 배어 있는 전통이라 1920년대에 BBC방송국은 처음 공영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클래식 연주회를 내보냈을 때 감상자들이 정확히 어떻게 이 새로운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강의를 했다. 음악을 집중하지 않고 배경으로 듣는 수동적인 감상자가 되지 말고 그들의 프로그램을 주의 깊게 선택하여 라디오 수신기를 지적이고 예술적으로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콘서트홀에서 일단 벗어나면 청중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따. 바로 그것이 BBC가 두려워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