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학

[음악학]음악 사회학, 천재는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천재 작곡가는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으로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지만, 결국에는 그 음악의 우사함이 승리할 것이기 때문에 인정을 받기 위한 투쟁은 승리로 끝난다는 것이 19세기적 사고의 핵심이다. 천재는 영웅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사회학적 관점에서 천재 작곡가란 무엇인가? 티아 데노라는 이 문제를 서양음악의 가장 유명한 천재 중의 하나인 베토벤과 연관시켜 연구했다 데노라는 어떻게 20대의 풋내기 작곡가인 베토벤이 빈에서 프리랜서로 성공을 할 수 있었는가를 묻는다. 무엇이 그를 돋보이게 만들었고,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해 무엇이 그를 슈퍼스타 작곡가가 되는 길 위로 데려다 놓았는가? 사람들이 그의 음악의 우수함을 점점 더 인정했따는 것이 그의 성공에 있어서 유일한 혹은 주요한 요인인가? 베토벤 천재 만들기라는 데노라의 저서는 이 마지막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이 아니다라는 것을 그 제목으로 미리 말하고 있다. 이 책의 부제인 1792-1803년 빈의 음악정치 역시 자율적인 예술품이라는 사고에 대한 데노라의 생각을 알려주는 힌트이다. 사회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베토벤의 작품들은 공중에 떠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만든 틀 안에 존재한다. 왜냐하면 베토벤의 작품들은 베토벤 자신, 귀족 후원자들, 출판 업자들, 연주회 기획자, 극장 운영자, 음악 비평가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망의 일부로서 그 사람들의 필요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계층에 따라 배열이 되는데, 여기에서는 귀족 후원자가 대중적으로 공개되는 것을 막는 문지기 역할을 한다. 권력을 잡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출판업자와의 계약, 음악회 발표, 한쪽 방향으로 쏠려 있는 학생들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일이 수월하다. 권력가들을 잘 아는 작곡가들은 그렇지 않은 작곡가들보다 살아 있을 때의 경력이나 죽은 다음의 명성을 더 잘 관리할 수 있따. 여기에서 데노라는 베토벤의 재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데노라는, 역사적 연구를 통해 판단하건대, 베토벤이 누린 특권에 사회적 환경이 중요하게 작용했으며, 베토벤이 그 당시 작동하는 후원 체계 속에서 자신의 길을 보았고 그 길을 성공적으로 지나왔다는 것을 주장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연구 이면에는 또 다른 더 근본적인 질문이 깔려 있다. 베토벤의 생애와 얀 라디슬라브 뒤섹처럼 베토벤과 비슷한 장르와 양식으로 작곡을 했던 이류 작곡가의 생애를 비교하면 알 수 있는 것이다. 베ㅐ토벤과 비슷한 나이의 잘 알려지지 않은 빈의 작곡가를 찾아내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베토벤의 것과 바꾸어치기 한다면 지금 우리가 베토벤이라는 이름을 들을 수나 있었겠는가? 그리고 만약 베토벤이 여성이었다면 또는 흑인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미술관이나 콘서트홀에 들어간 작품들이 위대한 작품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정말 안전한 생각일까? 종족음악학자들처럼 음악 사회학자들도 대상의 선정에 있어 똑같은 문제를 만난다.

 

예술 세계와 음악 경영

  데노라의 연구는 이전에 있었던 미술사 연구와 공통점이 많다. 미술세계라는 제목의 혁신적인 저서에서 하워드 베커는 화가들이 무엇을 그릴까와 어떻게 그것이 청중에 받아들여지는가는 그것이 나오기까지 영향을 미치는 너무나 많은 중개자들에게 달려있는데도 왜 화가들이 그들 작품의 유일한 작가로 간주되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후원자, 갤러리 소유자, 중개상, 경매인, 화가,협회 회장, 그림물감 제조자들이 모두 복합적인 생산 과정의 일부로서 그 창작 과정에 영향을 주고 그것이 탄생하도록 요구했던 것이다. 또한 베커는 그림을 들여다보는 사람들도 작가의 하나의 중요한 유형으로 보며, 미술의 신비로운 성격을 벗겨내고 그것을 우리 모두가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는 평범한 어떤 것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미술 세계에 대한 그의 관점을 여러 종류의 음악에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록 콘서트의 성공 여부는 노래 작가나 연주자로서의 음악가들의 능력보다 무대 기술과 조명 작업에 의해 더 좌우된다. 마찬가지로 밴드를 결성하는 경우에도, 백스테이지에는 중개인, 관리자, 레코드 판촉 담당자 사이의 네트워크가 있다. 의상에서부터 무대 디자인, 연주자 자신들의 안무에 이르기까지 밴드가 보여주는 이미지 안에 이들 모두의 이해관계가 놓여 있다. 음악의 스타일은 훨씬 큰 무엇의 한 요소에 불과할 뿐이다. 즉 음악에는 단순히 음악보다는 그 이상의 것이 있다.

  아마 대부분 우리는 오페라를 음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우리가 그렇게 문화화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치 오페라에는 작곡가 외에 다른 사람들이 관여하지 ㅇ낳았던 것처럼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와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스라고 말한다. 심지어 대본작가의 이름은 DVD전면에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학자들이 음악 작품이 오직 청중에게 도달할 때만 진정한 정체성을 얻는 것이라고 주장한 이후 작가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오페라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영화 크레디트와 비슷해진 것이다. 제작자, 감독, 지휘자, 번역자, 디자이너, 기술자들이 모두 최종 결과물의 성격을 결정하는 데 기여한다. 이처럼 제작 과정상의 실용적인 면을 경시할 수 없다.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백스테이지의 주요 직원은 재봉사, 무대 화가, 구두 제작자, 목수, 리허설 피아니스트 같은 사람들이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를 맡은 모든 감독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이 작은 하나의 도시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공통적인 예술적 목표를 끌어내고 이사들이 만족할 만한 대차대조표를 만드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돈 문제로 끌어 들인다. 결국 돈이 이 네트워크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누가 음악을 지원하는가? 또 어떤 방식으로 지원하는가? 음악 시장은 어떤 것인가? 음악적 경험을 뒷받침하고 그 선택에 영향을 주는 재정적 매커니즘을 연구하면 복잡한 가치 체계가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방 정부와 중앙 정부는 특정한 종류의 음악을 지원한다. 당연히 어떻게 공금을 쓰는가는 극히 정치적인 문제이다. 많은 작곡가들은 대학에서 교수로 월급을 받는 것으로 지원을 받는다. 많은 음악 기관들이 도산을 면할 수 있는 것은 개인 신탁자와 개별적인 기증자 덕분이다. 그들 중 몇몇은 공식적인 자선가로 등록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식으로 자금을 조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음악이 그 자체로서 시장 경제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음악 사회학의 매우 중요한 주제인데, 어떤 종류의 음악에는 맞지만 그렇지 않은 음악들도 있다.

  음반 산업이 이러한 차이를 반영한다. 주요 회사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최근의 경향은 개별적인 이익 중심적 체제로부터 분과들 사이의 교차 보조 체제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재즈나 클래식 음악과 같이 상대적으로 작거나 틈새에 있는 분과들의 재정이 노출되었다. 그들의 손실을 다른 곳의 이익으로 막아야 하기 때문이지만, 그때마다 모든 분과들이 그 회계를 발표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키스 네거스의 설명에 따르면, 그 결과 적자를 낸 분과 쪽으로 청중을 끌어 들여야 했기 때문에 클래식 음악의 포토폴리오에 계절상품, 최고의 히트작전집, 크로스오버 같은 것까지 들어왔다. 이러한 움직임은 앞서 언급한 오케스트라의 교육 프로그램들과 비슷하다. 그들의 목적은 보통 때라면 CD 상점에서 클래식 음악 섹션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을 소비자들을 자체 검열 때문에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이러한 CD를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것도 이로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육에 의해서보다는 재정적인 관심에 의해 더 민감하게 좌우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