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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학

음악사는 주로 작곡가들과 악보들로 구성되는가? 아니면 문화적 환경인가?

양식적 혹은 사회적 역사?

 

  연구의 대상이 정해지면 분석가들은 그것은 음악적으로 어떠한 기능을 하는가? 라고 묻는 반면, 역사가들은 그것은 어디에서 왔는가? 또는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는가? 아니면 아마 그것이 이후에 어떻게 발전했는가?라고 물을 것이다. 만약 음악사 연구의 1차 자료가 되는 음악 작품이 나왔던 시기만 논한다고 해도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관점으로 역사적인 질문들을 하게 될 것이다. 하나의 관점은 순수하게 음악적 혹은 양식적인 영향에 대한 것이며 다른 하나의 관점은 사회적, 정치적, 학술적 맥락에서 구축된 역할이다.

  베토벤의 예로부터 시간적으로 한 걸음 더 뒤로 가서, 사례 연구로서 초기 르네상스 시대(음악사에서는 대략 15세기 전반에 해당)의 기욤 뒤파이의 작품들을 살펴보자, 우리의 역사적 짐룬에 대한 답은 뒤파이가 이전이나 동시대의 대가들에게 어떻게 빚지고 있는지를 검토함으로써 찾을 수 있다. 그 시기에 대한 역사적 연구의 여정은 종교음악과 세속음악 사이, 그리고 미사와 모테트 사이에서 차이가 나는 표현양식과 뒤파이 이전 음악에서는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았던 표현양식의 개인적인 독창성을 살펴보면서, 뒤파이의 작품들에 대한 진화적인 발전을 모두 포괄하는 수준까지 확장될 수 있다. 또한 뒤파이의 성숙한 표현 양식이 반대로 15세기 후반의 작곡가들에게 중요한 모델이 되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음악양식의 비교에 근거해서 모든 답들을 찾을 것이다. 우리는 뒤파이를 14세기 아르스노바 시대부터 조스캥 데 프레(1450년경 출생)에 이르는 내러티브 안에 놓는다. 다른 말로, 그는 중세에서 르네상스 음악으로 넘어가는 중심인물이 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진보'의 과정으로 읽고, 따라서 뒤파이를 '진보적인'인물로 분류하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진보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현대에 사용되고 있는 '진보적인'이라는 말의 의미를 15세기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음악사가 간단한 것에서 복잡한 형식으로 진보했다고 서술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뒤파이가 놓인 상황을 고찰하면서 우리가 제기했던 문제들에 대한 답들을 찾아보자. 뒤파이에게는 많은 요인들이 작용을 했다. 우선 뒤파이는 교황의 가수로 고용되어 생애 대부분을 교회음악가로 살았는데(실제로 많은 과거의 '작곡가'들은 주로 작곡가가 아니라 연주자로 고용되었다), 종교적인 전례의 의무는 그에게 제약들을 부과했지만 기회도 제공했다. 또한 뒤파이는 다양한 기회에 사부아 궁정을 위해서 일했던 궁정음악가이기도 했는데, 후원자들은 그에게 특별한 요구를 했다. 그리고 그가 머물렀던 여러 서로 다른 문화적 중심지들의 환경도 또 다른 요인이었다. 예를 들어, 부르고뉴 공국의 캉브레와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의 분위기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또한 사상의 풍조도 폭넓게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그가 개인주의를 강화시킨 것은 인본주의 시대와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다. 이 절의 시작에서 말했던 '사회적, 정치적, 학술적 맥락'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실제로 어떻게 음악 양식이 사회적 필요에 응하는지 밝히면서 뒤파이 음악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음악학자들은 어떠한 관점이든지 상관없이 언제나 음악 작품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종종 작품개념(Work concept)을 말한다(Goehr1992). 이것은 음악이 실제로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가 대안적으로 정의하기 시작한 것과는 다른 사고방식이다. 대안적인 해석은 자연스럽게 어떻게 우리가 음악사의 주체-대상을 설정 하는가와 관계가 있는데, 그것에 대해 지금 잠깐 생각해보자. 앞서 네 번째 주요 이슈에서 소개한 달하우스의 질문을 살펴보자. 사실 무엇이 음악사의 '실제'인가? 여기엔 하나 이상의 답이 있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기는 하지만, 음악은 공연 예술이고, 음악의 역사는 문화적 실제로서의 음악을 생산한 역사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음악사의 주체-대상에는 음악을 만드록, 음악을 권장하고, 음악을 감상하고, 음악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관련된 수많은 다양한 실제들이 포함된다. 음악사의 이야기는 연주, 교습, 제작 현장, 직업 등을 중심으로 셩성된다. 하지만 다음ㅇ 단계에서는 저널, 출판사, 방송, 녹음 산업과 같이 취향을 만들어내는 기관이 음악사의 부차적이지만 중요한 이야기로 들어온다. 이 모든 것이 앞에서 제시한 양식사와 분명히 구별되는, 음악의 '사회사'이다. 이는 일반 역사에서도 관심이 왕이나 여왕에서 벗어나 '평범한 사람들'을 다루는 쪽으로 바뀐 것과 비슷하다. '음악 사회사'의 최고 관심사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의 음악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미학적인 가치에 대한 문제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걸작들로 이루어진 정전이라는 개념을 강화한다고 할 수 있는, 음악 작품에 기초한 역사와는 매운 상반된 것이다. 실제로 이 두가지 역사는 대부분의 시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대중적인' 레퍼토리와(대개는 사회적으로 특권을 누린) 소수에게 제공되었던 '중요한'레퍼토리를 분리하면서 서로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간다. 오늘날에는 이른바 '대중음악'이 점점 음악사의 제3의 단계로서 음악사 연구에 포함된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