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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학

음악사는 그것이 일어난 시간과 장소에 대하여 무엇을 말해주는가?

숨은의도?

 

  여러분은 틀림없이 그로브 음악과 음악가 사전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1879-1889년에 네 권으로 처음 출판된 이후 이것은 거의 매 25년마다 개정이 되었다. 최근 판은 2001년에 나온 새 그로브 사전의 재판인데, 이는 사실상 이 사전의 일곱 번째 판에 해당한다. 이 사전의 긴 역사동안 일어난 변화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2001년 판에서는 전적으로 새로운 용어들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어떤 용어들의 등장은 어느 정도 예상 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황금 수와 해체이론과 같이 이론이나 분석과 관련된 전문 용어, 광둥어 팝(광둥어와 서양 팝음악이 결합된 형태의 대중음악)이나 테크노처럼 이전 판들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던 대중음악과 관련된 용어, 서사학이나 게이와 레즈비언 음악과 같이 최근에 음악학이 콘텍스트 이론 쪽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용어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전혀 예기치 않은 경우도 있다. 2001년판에서 처음으로 정전이 내가 이 단원에서 사용했던 것과 같은 의미로 사전에 등장했다. 장르, 그리고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초판부터 있었던 용어들의 의미 변화를 추적하는 일일 것이다. 그 용어들에 대한 지금의 정의는 1879년에 그로브가 시도했던 정의들과 연결고리가 없다. 이것은 음악사가 다루는 주제 중에서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주어진 시대의 사상적 기조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종종 부지불식간에 그 시대와 그 장소의 현견을 드러낸다.

  만약 한 걸음 떨어져서 비판적인 눈으로 음악사들을 살펴보면 이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심지어 역사들의 역사를 쓸 수도 있다. 실제로 최초로 이러한 시도를 한 책이 1039년의 알렌의 음악사의 철학이다. 우리가 보통 서양고전음악이라고 하는 것의 역사의 초창기인 18세기 후반의 요한 니콜라우스 포르켈과 찰스 버니, 그리고 19세기 중반의 페티는 적어도 빈말이라도 다른 문화의 음악의 가치를 인정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에 프란츠 브렌델이 집필한 음악사는 그렇지 않았는데, 여러 권으로 이루어진 그의 음악사는 유럽식 정전 역사의 전형적인 모델이 되었고, 그 유명한 1960년 그라우트의 저서 같은 후대의 역사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귀도 아들러는 음악의 양식, 음악역사의 방법에서 위대한 작곡가들의 역사가 아닌 음악 양식의 역사를 제안하면서 브렌델의 모델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리고 훨씬 뒤에 발터 뷔오라도 민속음악이 음악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함으로써 기존의 음악사와 다른 입장을 취했다. 방식은 달랐지만 20세기 역사가인 에른스트 뵈켄과 게오르크크네플러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의 책의 출판 연도도 차이가 많고 크네플러가 공산주의 동독에서 활동하는 등 각각 우익과 좌익으로 정치적 성향은 상당히 차이가 있으나 둘 다 공통적으로 사회사적으로 음악사에 접근함으로써 역사의 방향을 콘텍스트 쪽으로 틀었다. 내가 여기에서 증명하려고 했던 것은 역사가 여러분에게 그들의 저자와 그것이 쓰인 시대와 장소에 대해 많은 것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음악사의 주제-대상이 수정되어야 하는 세 가지 분야에 대해 지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첫쨰는 젠더인데, 마르샤 시트론과 같은 학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특히 여성 문제를 역사에 포함시키는 범위나 그 깊이가 부족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다양한 각도의 연구 덕분에 음악사에서 여성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파니 멘델스존의 경우와 같이 심층적인 전기적 역사 연구나 조세핀 랑에 대한 상세한 음악 분석 연구, 헨리에타 존탁과 마리아 말리브란과 같은 가수들의 연주 활동은 물론 창작 활동까지 연구한 연주 역사, 특별히 살롱과 같이 여성의 참여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후원의 역사를 다룬 사회 역사적 연구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그동안 음악사의 전통적인 내러티브에서 여성이 얼마나 심각하게 평가절하 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앞서 연주 역사를 언급했는데, 나는 연주를 음악사에서도 도외시된 두 번째 영역으로 꼽고자 한다. 사실 이것은 첫 번쨰 영역인 여성과도 관계가 있다. 우리가 연주를 중심부에 높고 음악사를 다시 쓴다면 젠더 균형과 같은 다른 여러 분제들도 많이 해결될 것이다. 음악사에서 지리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런던은 베토벤과 슈베르트 시대에 유럽의 음악 중심지로 부상했다. 대체로 역사가들이나 분석가들은 음악이 공연 예술이라는 사실을 가릴 정도로 연주자보다는 작곡가에게 가치를 부여한다. 하지만 연주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우선 해석이라는 패러다임으로부터 연주를 해방시켜야 한다. 음악가들은 연주할 때 종종 원래 의도를 찾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어디까지 가능한지 의문이다. 나는 음악가들이 창조하는 새로운 의미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방향을 조금만 바꾸면, 니콜라스 쿡과 같은 학자들이 인식한 것과 같이, 연주에 대해 기존의 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작품의 연주가 아니라 작품에서 연주 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연주자들이 우리의 음악사 서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음악사 서술의 세 번째 빈틈은 지리에 관해 앞서 지적한 문제와 관련이 있다. 음악사는 전체적으로 그 논의를 몇몇 소수의 지역, 너무나 잘 알듯이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에 한정한다. 여기에 누락되어 변방으로 표현되고 있는 지역들의 목소리는 어떻게 들을 것인지 당연히 궁금할 것이다. 물론 여러분 스스로 중심과 변방을 선택할 수 있다. 나 자신이 현재 연구하고 있는 것도 유럽의 남동쪽 발칸 반도의 암악으로, 음악사에서 전형적인 변방이다. 내가 제기했던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발칸 반도의 음악사 연구가 동양과 서양의 문화전통의 형성과, 문화적 정치와 미학적가치 사이의 끊임없는 연결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발칸에서는 서로 다른 음악들이 국가적, 지역적, 사회적, 문화적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 발칸의 타자들은 유럽 사람들의 현대적인 활동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발칸 자체의 서구화와 현대화의 영향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에대해 여기에서 답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들도 이 질문들을 통해 어떻게 서구 유럽이나 오토만 터키의 문화적 전통들이 주변화와 정전의 구축이라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고, 지지되고, 권장되는가에 대해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여러분 자신의 변방을 택할 수 있다. 발칸 반도는 음악사의 기존 내러티브에서는 거의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면 발트해의 국가들도, 스페인도, 포르투갈도, 스웨덴도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이른바 주류전통이라는 것을 구축한 과정이 예술보다는 맹목적 애국주의 정치와 관련이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또한 소위 변방 문화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수정해야 하지 않을지 묻게 된다. 우리가 이러한 전통들에 대해 가치를 두지 않는 것은 종종 그것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달리말해, 이러한 레퍼토리들에 대해 무지 때문에 그 음악을 경시하고 감상자들을 무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오늘날에는 이러한 맹목적 애국주으ㅢ가 무엇을 초래했는지 인식하고 있다는 징조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