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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학

[교회음악학]종교개혁 시대에 나타난 교회음악2, 칼빈의 교회음악

칼빈의 교회음악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여 '이중적 예정론'을 내세운 칼빈은 예배음악에 있어서는 매우 엄격하였다. 그는 루터보다 20년 후에 나타나 프랑스를 중심으로 개혁교회의 지도자로서 활동하며 루터와 대등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신학과 음악에 대한 견해는 피차 다른점이 많았다.

  칼빈은 음악에 있어서 로마 카톨릭의 전통과 유산을 완전히 거부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가 음악 이론보다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서와 하나님의 주권에 그 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칼빈은 인생의 목적이 에배에 있고 올바른 예배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행해져야 한다는 독특한 에배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 즉 성서에서 나온 기사만을 예배음악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칼빈의 신학적인 이유 때문에 칼빈이 주도하던 개혁 교회의 에배에선 오직 시편과, 몇 개의 송가만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칼빈이 교회에서 음악을 제한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악기 연주를 반대했다. 그는 구약시대에는 악기 사용이 필요했다고 생각하나 신약시대에는 불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즉 구약시대는 하나님 백성들의 유년기였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듣도록 자극하는 기악이 필요했으나, 신약시대에는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가지고 악기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고전14:15

또한 그는 카톨릭이 오르간을 교회에서 사용함으로서 음악을 오용한다고 보고 ㅂ많은 오르간을 처거시켰다.

교회를 치장하고 오르간이나 장난감 종류들을 사용하여야만 더 위엄 잇게 경배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교황이 유대예식을 우스꽝스럽고도 적절치 못하게 모방한 것이다. 이로 인해 말씀과 하나님 경배가 세속화하여 백성들은 외적예식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말씀 깨닫기를 소홀히 한다.

  둘째 칼빈은 교회에서 성악곡만을 허용했다. 그러나 이것도 다성 음악이면 불허했다. 즉 단성부 음악만을 허용했다. 그 이유는 다성 음악이 말씀을 분명하게 하지 않고 어둡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독창으로 부르지 않는 집단에 의해 불리우는 단선율 성가를 택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감정의 움직임이 아니라 신앙의 고백이었는데, 기악은 감정을 움직일 수는 있으나 신앙의 고백은 못한다고 보았다.

  셋째 그는 성경 안에 있는 노래 가사만을(시편, 칸티쿰)을 사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것들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칼빈파 교회음악 중 주목받을 만한 유일한 소산인 '시편가'가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는 시편의 150편 모두를 산문시에서 프랑스어 운율시로 옮겨놓은 것이다.

  넷째 칼빈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의 작용력에 크게 주목했는데, 그는 말씀이 순수한 음악적 쾌락으로 흐려질 것을 염려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노래하는 자의 분별력을 크게 강조했다.

바울이 말했듯이 모든 나쁜 말이 좋은 예절을 망친다는 것은 진실이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멜로디까지 붙여지면, 이 말은 가슴속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마치 포도주가 깔때기를 통해 통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그렇다 독약과 부패가 우리 영혼의 내면까지 멜로디를 통해 스며든다.

  다섯째로 그는 교회음악이 선교적 임무를 가졌다고 보았다. 즉 단순히 교회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고 보았다.

  여섯째로 그는 교회음악이 교육적 임무를 가졌다고 보았다. 칼빈은 음악을 청소년 교육과 교인들의 예배 교육을 위해 허용했다.

  그는 루터나 쯔빙글리보다는 음악적 교육과 소양이 못한 편이었지만, 로마 카톨릭 미사음악이 너무 기교에 빠져 외부적 웅대한 음향을 자랑하게 된 것을 잘 알고 있던 자였으므로 오직 성서에서 나온 가사만을 선택한 것이었다.

 

쯔빙글리의 교회음악

 

  1518년 스위스에서 칼빈보다 먼저 종교 개혁을 시작한 쯔빙글리는 루터의 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는 전통적 미사의 집례를 거부하고 그가 세운 새로운 예배 형식을 도입하는데 이 예배 형식은 첫째 일반인의 언어, 둘째 평교인들의 기도 참여, 셋째 게속적인 성경낭독, 넷쨰 음악 사용금지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찬송가는 페기처분 되었고, 2년 후인 1527년엔 교회에서 오르간이 제거되었다. 그는 이사야서 강해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대인들에게 시편가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의 기쁨을 시사한 것뿐이다. 교회에서 찬송가는 필요 없다. 왜냐하면 외적인 것들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잡된 것들이 쉽게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쯔빙글리는 종교 개혁자 중에서도 그 음악성이 가장 좋은 사람으로 평가된다. 심도 있는 음악교육을 받고 악기도 잘 다루었으며 작사와 작곡도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에배에서의 음악을 자극적으로 보았고 모든 악기를 가인의 유산으로 취급하여 다성 음악과 오르간 등의 악기의 사용을 금지시키고 무반주 제창만 사용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