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와 지각에 대한 도전
전의 포스팅에서 '음악 듣기'에서도 확인했듯이, 월드뮤직 시장에서는 전형적인 상업적 음반이나 무대 연주에서 음향, 분위기, 리듬, 선율의 변화를 꾀하고 감상자들의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테크닉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 소리들은 세계적으로 지배적인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취향에 도전이 되기 때문에 여전히 자주 기피된다. 예를 들어 누에보(nuevo) 플라멩코는 종종 플라멩코의 감정적 힘의 핵심이었던 전통적 가수들의 거칠고 격정적이고 울부짖는 창법을 버리고 부드럽고 서정적인 목소리를 선택했다. 이와 유사하게 스튜디오에서 월드뮤직 음반을 녹음할 때 짐바브웨의 엠비라 연주자들은 엔지니어들의 엠비라가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악기의 조개껍질 위나 병 위쪽에 테이프를 붙이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엠비라 연주자들에게 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그 음악의 본래의 고유한 소리이자 미학이겠지만, 엔지니어들에게 그것은 금속 건반의 순수한 소리를 방해하는 소음일 뿐인다.
세계음악을 공부하면 소리의 차원을 넘어서 음악이 사람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만드는 사상, 관계 신념, 맥락 등에 관심을 갖게 된다. 또한 우리 귀에 대해 도전을 해서 세계음악을 공부하는 다른 방식을 탐색하게 한다. 음악 작품을 감상할 때 우리가 듣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같은 것인가? 음악의 경험을 처리하는 개개인의 육체적 능력은 독특하기 때문에 아마 두 사람조차도한 곡에 대하여 정확하게 똑같은 방식으로 경험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음악적 경험의 측면이 ㅁ낳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실제로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음악이 그렇게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문화의 음악은 어떠한가? 예를 들어 그 음악의 박자를 같이 따라가고, 협화와 불협화를 구분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유럽에서 활동하는 아프리카 음악가들은 그들이 연주하면서 만들어내는 박자에 맞추지 못하고 다르게 춤을 추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혼란스럽다. 아프리카인이 아닌 사람들 중에는 아프리카 폴카리듬 음악에서 기본이 되는 박자를 지각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 때문에 세네갈 출신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쑨두(Youssou N'Dour)는 비아프리카 시장을 위한 음반에서 곡의 박자를 따라갈 수 있도록 추가로 신디사이저 드럼 비트를 믹스하기까지 했다.
협화와 불협화의 개념과 어떻게 이들이 음악적으로 표현되는가는 안데스 시골에서도 의문을 일으킨다. 볼리비아 고원지대에 리코더같이 생긴 '핀킬루' 플루트는 두 가지 종류의 소리를 낸다. '타라'라는 크고 강하고 진동이 심한 소리와 '키와'라는 보다 작고 얇고 맑은 소리이다. 타라의 진동이 심한 소리의 성격은 서양 음향의 관점으로 보면 말 그대로 '불협화음'이다. 그것은 서로 '음정이 맞지 않는' 두 피치를 서로 다른 비트에 맞추기 땜누에 생기는 것이다. '핀킬루' 플루트는 그 구조상 세게 불면 꼭 두 사람의 목소리처럼 대략 옥타브 차이가 나는 '두 개의 소리'가 한 박자 차이를 두고 나면서 풍부한 멀티포닉 텍스처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연주자에게 있어 '타라'는 사회적 화합, 생산성, 기의 순환, 두 사람 사이의 상부상조 정신 같은 의미이다. 반면 '키와'는 순수한 플루트 소리를 내므로 서양 음악적 관점에서는 협화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안데스 지방에서 '키와'라는 말은 사회적인 불협화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사람들을 묘사할 때는 비열하거나 인색한 사람, '베풀지 않는' 사람, 비생산적이고 게으르고 비겁한 사람을 가리킨다. 다르게 말해, 안데스의 맥락에서 협화음이란 나눔, 생산과 연결된 개념으로서 음악적으로는 강한 진동을 만들어내는 플루트 음색으로 표현되는 반면, 불협화음은 나누고 생산하지 못하는 것과 연결되어 음악적으로는 가늘고 약한 소리로 나타낸다. 처음에 외부인들은 안데스의 여러 지역의 전형적인 거칠고 불협화적인 플루트 소리를 좋아하기 힘들 테지만, 그 지역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조화와 풍요의 즐거운 감정을 전달해주는 것이다. 우리 청취의 문화적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질문해보자. 그리고 우리의 청취에 있어 민족 지학적인 태도을 가져보자.
영혼의 엠비라(Mbira Dzavadzimu) 이제는 엠비라 자바드지무(Dzavadzimu, 영혼이라는 뜻)라는 악기가 국제적으로도 많이 친숙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 악기의 기원은 짐바브웨 소나 지역의 원주민들에서 찾을 수 있다. 이곳의 원주민들은 '비라'라는 의식을 진행하는 동안 엠비라를 연주하며, 이와 함께 호쇼라 부르는 박을 달그락거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도 췄다. 이 음악은 예로부터 무아지경의 상태로 들어가는 매개 역할을 했고 불행이나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조상과 소통하는 출입구를 열어주었다. 비라가 진행되는 동안 엠비라 연주자들은 악기를 조개껍데기나 병뚜껑 같은 것들이 붙어 있는 커다란 박 안에 두고 연주하는데, 이는 여기에서 소리를 증폭시키고 부가적으로 윙윙거리는 소리들을 만들기 위해서다. 의식에서는 전통적인 레퍼토리들이 연주된다. 옛날 선율이어야 조상들이 인식하고 듣기 때문이다. 양손의 엄지손가락과 다른 손가락들이 엠비라의 22개의 금속 건반 사이를 오가며 만드는 2박자와, 무희들이 추는 춤곡 리듬과 박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기반을 두고 있는 3박자가 어우러져서 전형적인 폴리리듬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음악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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